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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음 참호 (토도로키고)

Todoroki Trench
轟壕 (トゥルルチ・トゥルルシ)

오키나와 전투의 비극을 간직한 자연 동굴 피난처

역사/문화전쟁 유적/기념물📍 이토만

🖼️ 이미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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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기본 정보
📍 명칭굉음 참호 (토도로키고) Todoroki Trench 轟壕 (현지 발음: 투루루치 또는 투루루시)
🏛️ 유형역사/문화 > 전쟁 유적/기념물
🗓️ 역사적 중요 시기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민 및 현청 피난처)
🔗 웹사이트https://www.city.itoman.lg.jp/kankou_bunka_sport/kankousisetu/9995.html
🗺️ 소재지Ishiki, Itoman, Okinawa 901-0363 일본
이용 정보
⏰ 운영 시간상시 개방 (별도 관리 인력 및 시설 없음, 자유 관람)
💰 이용 요금무료
⏳ 추천 소요 시간약 30분 ~ 1시간 (탐험 깊이에 따라 다름)
📞 문의+81988408135 (이토만시 관광문화체육과)
방문 정보
☀️ 최적 방문 시기건기 (최근 며칠간 비가 오지 않은 맑은 날)
🚗 주차 정보공식 주차장 없음. 주변 도로변에 다른 차량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차해야 함.
🚇 대중교통대중교통 접근이 다소 어려울 수 있음. 구글 지도 등을 이용한 경로 확인 권장.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이동 필요.
♿ 접근성 정보휠체어 접근: 불가능 경사로/엘리베이터: X 장애인 화장실: X 장애인 주차 구역: X 기타 참고사항: 자연 동굴 지형으로 인해 바닥이 고르지 않고 미끄러우며, 계단이 가파르고 좁아 거동이 불편한 경우 탐방이 어렵다. 유모차 접근도 불가능하다.

자주 묻는 질문

입장료는 얼마인가요?
무료
운영 시간은 언제인가요?
상시 개방 (별도 관리 인력 및 시설 없음, 자유 관람)
어떻게 가나요?
대중교통 접근이 다소 어려울 수 있음. 구글 지도 등을 이용한 경로 확인 권장.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이동 필요.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Ishiki, Itoman, Okinawa 901-0363 일본
공식 웹사이트가 있나요?
네, 공식 웹사이트는 https://www.city.itoman.lg.jp/kankou_bunka_sport/kankousisetu/9995.html 입니다.

개요

오키나와 전투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과 역사의 현장을 직접 느끼고 싶은 역사 애호가나,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다크 투어리즘 성향의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전쟁 중 민간인과 공무원들의 피난처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어둡고 습한 동굴 내부를 (안전이 확보된 범위 내에서) 탐험하며 당시 피난민들의 절박했던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동굴 안팎의 자연환경을 통해 전쟁의 상흔과 대비되는 현재의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동굴 내부는 별도의 조명 시설이 없고 바닥이 미끄러우며, 낙석 및 일부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방문객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별도의 관리 인력이나 안전시설이 부족하고 공식적인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방문 시 각별한 주의와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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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시간
0.75

기본 정보

동굴 구조 및 규모

굉음 참호는 동서 방향으로 약 100m 길이에 걸쳐 형성된 자연 동굴이다. 내부에는 지하수가 흐르는 구간도 있으며, 일부 구간은 매우 좁고 어두워 탐험에 주의가 필요하다.

역사적 중요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곳은 인근 주민들과 일본군뿐만 아니라 시마다 아키라 오키나와현 지사를 비롯한 현청 주요 간부들이 피난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오키나와 현청 최후의 터'로도 불리며, 당시 최대 1,000명 이상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접근 방법

자가용 이용 시

  • 내비게이션에 'Todoroki Trench' 또는 일본 주소(Ishiki, Itoman, Okinawa 901-0363)를 입력하여 찾아갈 수 있다.
  •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주변 도로 상황을 고려하여 다른 차량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곳에 주차해야 한다. 도로 폭이 좁은 구간이 있을 수 있으니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으며, 일부 방문객은 콘크리트 계단을 표식 삼아 찾는다는 언급이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 이토만 버스터미널에서 목적지 인근으로 향하는 노선 버스를 이용한 후, 상당 시간 도보 이동이 필요할 수 있다.
  • 정확한 버스 노선 및 시간은 방문 전 오키나와 버스 정보 시스템 등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으로, 방문 계획 시 교통편을 미리 상세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특징

자연 동굴 탐험 및 관찰

어두운 동굴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는 모습
자연적으로 형성된 약 100m 길이의 동굴 내부를 직접 탐험하며 독특한 지형과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좁고 천장이 낮으며 지하수가 흐르기도 하여 모험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지만,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 동굴 깊숙한 곳까지 탐험하려면 강력한 방수 손전등과 미끄럼 방지 장화,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여벌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무료

역사적 현장 체험 및 반추

동굴 입구에 놓인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학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피난민과 오키나와현청 공무원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역사적 장소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어둡고 습한 동굴 안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방문 전 오키나와 전투와 관련된 자료를 미리 학습해가면 현장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 무료

동굴 주변 자연환경 관찰

동굴 입구 주변의 울창한 아열대 식생
동굴 주변은 아열대 식물들로 우거져 있어 어두운 동굴 내부와는 대조적인 자연환경을 관찰할 수 있다. 동굴 내에는 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혹 다른 작은 생물들도 발견된다. 다만, 모기가 많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 동굴 주변 식생 관찰 시에는 긴팔, 긴바지를 착용하고 모기 기피제를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좋다.

💰 무료

추천 포토 스팟

축제 및 이벤트

방문 팁

강력한 손전등은 필수이며, 휴대폰 플래시만으로는 동굴 내부를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 특히 바닥이 젖어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화를 착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동굴 내부는 습하고 더러워질 수 있으므로, 활동하기 편하고 더러워져도 괜찮은 긴 소매 옷을 입는 것이 좋다.
모기가 매우 많으므로 모기 기피제를 반드시 사용하고,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복장을 하는 것이 좋다.
낙석의 위험에 대비하여 안전모(헬멧)를 착용하면 더욱 안전한 탐험이 가능하다.
최근 며칠 이내에 비가 내렸다면 동굴 내부가 침수되었거나 평소보다 더 위험할 수 있으므로 방문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안전을 위해 단독으로 방문하기보다는 2인 이상이 함께 방문하여 서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구가 명확한 표지판 없이 콘크리트 계단 형태로 되어 있어 지나치기 쉬우니, 방문 전 지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숙지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1945년 3월
피난 시작
미군의 오키나와 본섬 상륙 작전이 임박하고 공습 및 함포 사격이 시작되자, 인근 마카베촌(真壁村) 나시로(名城) 지역 주민들이 굉음 참호로 피난하기 시작했다.
1945년 5월 말
피난민 증가 및 현청 이전 준비
일본군 제32군 사령부가 슈리에서 남부 마부니(摩文仁)로 철수하면서 전황이 악화되자, 전투를 피해 남하한 타 지역 주민들도 굉음 참호로 몰려들었다. 오키나와현청 또한 기능 유지를 위해 이곳으로의 이전을 준비했다.
1945년 6월 7일경
오키나와현청 이전
시마다 아키라(島田叡) 오키나와현 지사를 비롯한 현청 주요 간부들이 굉음 참호로 이전하여 현청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45년 6월 15일
현청 기능 정지 명령
시마다 지사는 굉음 참호 내에서 현청 간부들을 모아 오키나와현청의 행정 기능 정지를 명령했다. 이로 인해 굉음 참호는 '오키나와 현청 최후의 터'로 불리게 되었다.
1945년 6월 18일경
미군의 공격 및 참호 내 상황 악화
미군이 참호 입구에 가솔린을 부어 불을 붙이거나 폭약이 든 드럼통을 투하하는 등의 '마타기 공격(馬乗り攻撃)'을 감행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식량 부족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아사하거나 병사하는 피난민도 속출했다.
1945년 6월 25일경
피난민 투항
먼저 미군의 포로가 되었던 미야기 시키치(宮城嗣吉) 등이 참호에 남아있는 피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투항을 권고하자, 약 500~600명의 피난민이 참호 밖으로 나와 미군에 투항했다.

여담

굉음 참호는 현지에서 '투루루치(トゥルルチ)' 또는 '투루루시(トゥルルシ)'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과거 한 방문객이 동굴 내부에서 석기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칼 형태의 유물을 발견하여 현립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굴 입구 근처에는 이곳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놓인 작은 제단과 종이학들을 때때로 볼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동굴 내부의 지하수가 흐르는 곳에서는 작은 게와 같은 생물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한때 누군가 동굴 바닥에 트럭 타이어와 같은 폐기물을 무단으로 버려, 역사적 장소에 대한 무례한 행동으로 지적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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